본문 바로가기

ESG/지속가능 신한

아름인 대학생 해외 봉사단 후기 - 센툴에서의 열흘을 추억하며

** 본 포스팅은 아름인 대학생 해외 봉사단 진범진 님의 후기 입니다 **



짧았다면 짧고, 길었다면 긴 인도네시아에서의 열흘이 끝났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아직 보고르 센툴에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 아름인에 지원을 했던 날부터 봉사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순간까지 두 달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정말 시간이 빠르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아름인 최종 합격 문자를 받은 후, 어떤 봉사를 하게 될까, 어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설레는 마음에 잠을 쉽게 못 이뤘던 기억이 납니다. 그 후 처음 사전 교육을 받던 날, 동갑인 친구를 찾으려 이리저리 고개를 돌렸는데 20살이 나밖에 없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남자끼리 숙소에 모여 서로 군대에 대한 얘기들을 하는데, 아직 신검조차 받지 않았던 나는 머쓱해하며 웃기만 했었지요. 하지만 막내인 만큼, 더 많이 배우려 했고 더 열심히 하려 했습니다. 형 누나들도 대단하고 멋진 분들만 모여서 그런지 배울 점도 정말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인도네시아로 떠난 후 현장에서 주로 건축봉사를 했었는데 집을 짓는다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이구나,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일일이 벽돌을 쌓고, 시멘트를 바르고, 페인트칠을 하고, 기둥을 세우고. 하지만 아무도 힘들다 투정 부리지 않았고 오히려 즐겁게 노래를 부르며 일을 하시는 모습이 정말 존경스러웠습니다. 우리가 즐겁고 힘들지 않게 일을 할 수 있었던 일등공신은 아마 앰프를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홈파트너와 함께 벽돌을 쌓을 때, 그분의 나이를 물었는데 “I’m 22.” 나와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아 놀라기도 했습니다. 즐겁게 얘기를 하면서 일을 하니 힘든 느낌도 어느새 싹 가시고 집도 거의 다 완성되어 갔습니다. 구경하러 온 동네 아이들과도 서로 이름을 물어보고, 사진을 찍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서로 말은 잘 통하지는 않았지만, 함께 일을 하고 얘기를 나누면서 마음만큼은 하나가 되고 있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쉬는 시간에 현지인과 함께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 중학생 때 기타를 잠깐 쳤었는데, 그때의 기억을 더듬거리면서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러드렸습니다. 그분들은 가사의 정확한 의미는 이해하지 못하셨겠지만, 함께 가사를 흥얼거리며 리듬을 타는 그 순간이 더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짤막하게 열렸던 공사장 속 무대에서 현지인 분들의 노래 실력에 깜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사람들은 다 이렇게 노래를 잘하나? 함께 노래를 불렀던 단원 형 누나들의 솜씨도 최고였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고 즐거웠던 활동은 신축된 도서관에 벽화를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신한카드에서 시자이안티 03 초등학교에 지어준 도서관에 아름인 벽화를 그려넣었습니다. 살면서 처음 그려보는 벽화라 매우 떨렸고, 붓칠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점점 우리의 그림이 그려지는 것을 보면서 물밀려오듯 성취감이 느껴졌습니다. 완성된 벽화를 바라보면서, 후에 이곳에서 책을 읽고 공부하며 꿈을 키워나갈 아이들을 상상하였습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든다고 해야 하나.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는 ‘신한카드 아름인’ 로고 앞에서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아이들이 계속 우리를 기억해주겠지? 개관식이 끝나고, 커팅된 리본 사이를 지나 도서관으로 들어가는 아이들을 보며, 아이들이 희망을 갖게 해준 아름인에 내가 소속되어 있다는 것에 큰 자부심이 느껴졌습니다.




문화공연이 끝나고 헌정식을 하기 위해 완성된 집으로 모였습니다. 페인트칠이 끝나고 어느정도 모양새가 갖춰진 집을 보니깐 그동안의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맺는구나 정말 뿌듯했습니다. 열쇠를 홈파트너께 전달하고 다같이 사진을 찍고 이제 헤어지는 시간이 다가왔는데 형 누나들이 하나둘씩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정들었던 홈파트너와 동네 아이들과 이젠 헤어져야한다는 생각에. 나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아이들 이름도 이제는 하나하나 다 외울 수 있는데, 아이들의 목소리를 이제는 들을 수 없다니. 아이들도 하나 둘씩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비록 며칠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짧은 시간과 언어의 장벽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이해했고, 함께 땀을 흘리며 어느새 친구가 되어 있었습니다. 오래된 어느 노래 가사처럼,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떠나는 길 뒤를 돌아 홈파트너 잔드라에게 외쳤습니다. See you again!



20살. 이제 막 미성년자 티를 벗고 한창 캠퍼스라이프를 즐길 나이입니다. 대학생이 되어 맞는 첫 방학은 모두에게 설레고 두근거리는 순간일 것 입니다.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도 있고, 알바를 하며 경험을 쌓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아름인 해외봉사단에 지원하였습니다. 1000명에 가까운 아름인 지원자중, 20살의 지원자는 10명도 채 안된다고 들었습니다. 그중 아름인에 선발되어 다녀온 10일간의 인도네시아는, 아마 평생 안고 갈 기억이 될 것입니다. 평범한 대학생과는 다른 경험을 하였고, 많은 것들을 보고 배웠습니다. 지금도 나는 친구들에게 한번쯤 해외봉사를 갔다 오라고 권합니다.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큼은 부자가 되어 돌아오는 행운을 맞이할테니까요.


한국으로 돌아와서, 앞으로 서로 자주 만나겠지만 이제는 각자 자신의 길을 걸어가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길을 걸으면서, 열흘간의 인도네시아를 추억하며 단원 형 누나들을 많이 떠올릴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추억이 가지는 의미는 달라지겠지만, 매 순간의 느낌은 변함없이 내게 다가올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