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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컬처 2019.08.14 09:00

[색다른 을지로] 을지로 속 몽환적인 스튜디오&필름현상소, 망우삼림

[을지로의 크리에이터, 첫 번째 인터뷰]



비범하되 본질에 충실한 스튜디오&필름 현상소 – ‘망우삼림’ 윤병주 대표

을지로 1번 출구 사거리에서 맞은편 건물 3층의 붉게 빛나는 네온사인을 발견하면 누구든 호기심이 일기 마련이다. 창밖으로 선명히 보이는 ‘忘憂森林(망우삼림)’이란 네 글자짜리 한자 간판이 비범한 아우라를 풍기며 눈길을 사로잡기 때문이다. ‘나쁜 기억을 잊게 해주는 망각의 숲’이라는 뜻의 이름을 지닌 이 공간은, 사진작가인 윤병주 대표가 운영하는 스튜디오&필름 현상소다. 공간 내부로 들어서면 이름만큼이나 몽환적인 공간이 눈 앞에 펼쳐진다. 방문객은 이곳이 결코 평범한 현상소가 아님을 한눈에 느낄 수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공간이 가장 충실하게 지켜나가는 건 사진관이라는 본질이다. 그 덕분일까? 작년 9월 말 문을 연 이후, 을지로의 핫한 공간으로 빠르게 입소문 난 망우삼림은 어느새 필름 사진을 애정하는 이들의 아지트로 단단히 자리매김했다.



을지로에 공간을 열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작년 여름부터 가게 오픈을 생각 중이었지만, 사실 ‘을지로’라는 지역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어요. 을지로의 노포를 좋아해서 친구들이랑 자주 먹으러 왔는데도 이렇게 핫한 지역인 줄 몰랐고요. 이 근처에서 일하는 친구를 만나러 왔다가 우연히 임대 광고가 붙은 지금의 공간을 발견한 거예요. 위치상 당연히 비쌀 거라고 생각했지만, 여기 시세나 알아보자는 생각으로 물어봤더니 제가 마련해 둔 예산을 끌어모으면 가능한 금액이더라고요. 무엇보다 사방으로 뚫려있는 창문이 너무 마음에 들었어요. 꽤 넓은 27평의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도 좋았고요. 인테리어에 대한 별다른 구상이 없을 때였는데, 창문을 보자마자 공간에 대한 인테리어 컨셉이 잡히기 시작했어요. 다른 곳을 더 찾아볼 생각도 없이 이곳이 마음에 꼭 들어 바로 가계약을 했죠.



홍콩이 연상되는 독특한 공간 컨셉이 인상적이에요. 무엇으로부터 영감을 얻었는지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하게 될지는 몰라도 언젠가 ‘나만의 공간’을 꾸리고 싶었어요. 중학생 때부터 ‘만약 가게를 낸다면 네 글자의 한자로 된 네온사인 간판을 달아야겠다’라고 생각했죠. 그때 이미 왕가위 감독 작품을 포함한 홍콩 영화에 푹 빠져 있었거든요. 식민 지배로 인한 영국의 산업화와 중국 문화의 영향을 동시에 받아 동서양의 분위기가 뒤섞인 홍콩 특유의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어요. 정말 우연히 을지로에 자리 잡게 됐는데, 마침 이곳의 지역적 특성이 제가 좋아하는 홍콩의 분위기와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더라고요. 사실 망우삼림은 제가 그동안 좋아해 온 것들의 총체라고 볼 수 있어요. 한 공간 안에 수백 번 본 홍콩 영화의 잔상과 아르헨티나에서 몇 년간 살았을 때의 기억, 미국의 밝고 햇볕 가득한 이미지에 대한 동경 등이 모두 한데 녹아 있거든요. 아버지께서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시기도 했고, 저도 사진작가 활동을 했기 때문에 일종의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나 자신을 투영해서 공간을 만들었어요.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삶을 살았고, 마침 자신을 표현하는 작가로서 살아온 덕분에 남들과는 다른 공간을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작은 소품 하나에도 작가님의 취향과 가치관이 고스란히 담겨있을 듯해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저는 홍콩 영화 마니아인데, 그중 왕가위 감독의 영화 속에 나온 램프와 시계를 찾아 공간을 꾸며 놓았어요. 아마 감독님이 직접 와서 본다면 이걸 어디에서 구했느냐며 놀라실 걸요. <해피투게더>에 나온 램프는 너무 갖고 싶어서 장장 17년 동안 찾아다닌 거예요. 시계의 경우는 대만 여행 도중 빈티지샵에서 고민하다 사 온 건데, 그게 100만 번을 봤던 <중경삼림>에 나온 시계와 똑같다는 것을 손님이 말해줘서 알고 소름이 돋았어요. 구하기 정말 어려운 건데 그야말로 성공한 덕후가 된 거죠. 제가 가게를 운영하기 시작한 뒤로 홍콩 영화에 영감을 받은 가게가 더 많아졌지만, 그 이전에는 단 두 곳뿐이었어요. 제가 어린 시절 우러러봤던 영화를 즐겨봤던 세대가 이제 어느 정도 자산을 모은 30~40대가 됐고, 그들 또한 저와 비슷한 꿈을 품고 있었다는 걸 그때 깨달았어요. 하지만 저는 왕가위 감독님의 작품 속 영화 소품과 똑같은 물건을 구해다 놓았다는 점에서 남다른 고증을 했다고 자부해요(웃음).



공간을 구상할 때 특별히 고려했던 부분이 있나요?

제 사진 작업대는 블루보틀의 일본 매장 디자인을 총괄한 스키마타라는 건축가가 디자인한 방식을 차용해서 만든 거예요. 테이블 상판이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져 있는데, 카페에서 흐른 액체를 쉽게 닦아내려고 고안한 거죠. 저는 사진을 현상하고 인화하는 작업이 커피숍에서 커피를 내리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에게 이 작업대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죠. 그래서 일반적인 현상소의 경우 작업실이 공간 뒤편에 숨어 있는 것과 달리, 저는 작업대를 공간 중앙에 두고 작업 공간을 전면에 드러냈어요.



이제 운영한 지 1년이 되어가는데, 직접 체감하는 을지로 지역만의 매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을지로가 가진 특별한 점은 과거의 역사를 고스란히 품고 있어 지역이 하나의 문화유산 같은 인상을 준다는 점이에요. 이곳을 이루는 조명 상가라든지 인쇄소 골목, 금속 공장 등은 사진작가의 입장에서 사진기를 들게끔 만드는 독특한 아우라가 있어요. 일반인의 눈에도 쉽게 볼 수 없는 낯선 모습이 흥미로운 볼거리이자 즐길 거리로 여겨지는 것 같고요.

최근 저는 진양상가 내 아파트로 이사했어요. 아예 을지로에 뼈를 묻으려고요(웃음). 예전부터 느꼈지만 세운상가의 거대한 주상복합 라인을 보면 홍콩의 오래된 어느 공간 같아요. 제 생활 반경이 집-가게-집인데, 집은 홍콩을 연상시키는 아파트이고, 가게에 출근하면 그곳의 분위기도 이국적이잖아요. 정말 한국에서 사는 것 같지가 않아요. 을지로의 이런 낯선 감각에서 계속 영감을 받고 있어요.



망우삼림에 대해 ‘사진과 미술, 을지로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는 곳’이라고 설명했는데, 어떤 공간을 만들고 싶었는지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저는 사진 작업을 통해 예술을 계속해왔어요. 영상도 하고 설치도 하는 ‘조형예술’을 해왔죠. 이 분야에서 계속 공부하고 직접 활동해온 만큼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은 거예요. 단순히 ‘사진을 어떻게 잘 찍어요?’라는 것보다는 조금 더 본질적인 질문, 사진이라는 건 대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라든지 사진으로 표현해내고 싶은 것을 구현할 방법에 대해서라든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손님들과 많이 나눠요. 이건 일반 현상소에서는 할 수 없는 이야기예요. 그분들은 현상 전문가는 맞지만, 사진을 미술적으로 이해하는 분들은 아니니까요. 저는 이곳을 찾은 손님이 사진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태원에서 스튜디오를 운영해보기도 했지만, 제 성향에는 그리 재미있지 않더라고요. 저의 최종 목표는 사진 작업을 통해 저만의 예술을 하는 것이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아하니까 지금과 같은 공간을 운영하게 됐어요.

현재 이 공간에서 망우삼림 현상소와 스튜디오를 함께 운영하는데, 손님들은 필름 현상도 맡기고, 증명사진도 찍고, 스튜디오 한편에서 제가 필름으로 찍어주는 특별한 프로필 사진도 촬영할 수 있어요. 오늘날에는 스튜디오와 현상소가 대개 분리됐지만, 예전에는 사진관에서 전부 하던 일이거든요. 디지털 사진이 대중화되면서 대부분의 사진관이 현상 기기를 처분했고, 점차 주변에서 현상소를 찾기 어려워진 거죠. 그런 점에서 망우삼림의 존재는 사진관의 ‘부활’인 셈이에요.



이토록 많은 사람이 망우삼림을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아무래도 독특함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색다른 가게 인테리어도 그렇고, 전문 사진작가가 사진관을 차린다는 게 일반적인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현상소’라는 공간의 본질은 손님이 맡긴 필름을 좋은 사진으로 제공하는 곳이에요. 시간 약속을 지키려고 매일 밤을 새워서라도 열심히 사진 작업을 해주고, 약품 관리도 철저히 하고, 색깔도 꼼꼼히 보고. 기본에 충실하다 보니까 많이들 믿고 맡겨 주시는 거겠죠. 사실 지금처럼 직원 세 명을 두면 제가 가져가는 돈은 거의 없다고 보면 돼요. 그렇지만 직원을 줄이지 않는 이유는, 고품질의 사진을 제공하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 노력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물론 돈을 투자해야 지금보다 양질의 장비와 기술을 가져올 수 있으니까 돈 버는 일도 무시할 수는 없겠죠. 저는 최선의 상태에 다다르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고, “지금은 조금 부족하지만, 앞으로는 더욱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드리겠다”고 말해요.


누군가가 이곳을 단순히 힙한 핫플로 소개하고, 인식하는 점에 대한 우려는 없나요?

저는 그게 오늘날의 시대 조류와 맞다고 생각해요.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30~40년 동안 쭉 운영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짧은 기간 내 많은 인기를 얻은 뒤 치고 빠질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보거든요. 그러다 보니 ‘핫플’이란 게 더욱 중요해지죠. 가게 운영자들의 생각과 소비자들의 생각이 맞물려 있는 거예요. 이런 시점에서 가게가 소비되는 일을 두려워하거나 불편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망우삼림의 경우, 현상소라는 공간 특성상 제공하는 사진의 품질이 마음에 들면 손님이 계속 찾아준다는 점에서 일반 카페나 술집보다 지속성이 담보되는 편이긴 하지만요.

최근 몇 년 동안 을지로에 생기는 가게들은 카페나 술집 등 요식업과 관련된 공간이 대부분이에요. 이 공간은 이 일대에서 유일한 사진관이다 보니 사진 현상을 위해 망우삼림을 찾은 분들이 을지로의 여러 카페나 맛집을 방문하게 되고, 반대의 경우도 자연스럽게 생겨요. 한마디로 누군가와 경쟁하는 입장이 아니라 서로 상생할 수 있는 거죠. 작년에 현상소를 열 때는 조금 두렵기도 했어요. 이렇게 많이들 좋아해 주시리라곤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최근 들어 필름 붐이 일고 있다고는 해도 근 3년간 새로 생긴 현상소는 없었어요. 하지만 망우삼림의 오픈 이후로 인테리어에 신경 쓴 젊은 감각의 현상소가 굉장히 많이 생겼고, 아마 그들 중 많은 이가 이곳에서 영향을 받았으리라는 생각에 자부심도 느껴요.



마지막으로 앞으로 해보고 싶은 사진 프로젝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을지로 일대를 아카이빙하는 작업을 한 번 해볼 생각이에요. 작가로 한창 활동할 때 내가 있는 공간을 대상으로 작업하는 게 제 스타일이었거든요. 이를 ‘장소 특정적 작업’이라고 말해요. 이전의 이태원 우사단길 작업이나 경기도 화성에서의 작업도 제가 살던 동네에서 했던 작업이고요. 이제 을지로에 들어왔으니까 뻔한 다큐멘터리나 저널과 같이 이 일대 공간을 일상적으로 찍는 게 아니라, 이 지역에 새로 생긴 가게와 오랫동안 이곳에서 일하셨던 노동자분들, 그들과 그들의 공간 등을 저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풀어내 보고 싶어요.

화성에서 진행한 작업의 경우 저 자신을 그곳에서 일하는 공사장 인부로 바꿔서 돌아다니며 작업을 했고, 우사단 작업의 경우는 매주 금요일마다 이슬람 사원에 가서 예배를 드렸는데 한 마디로 작업을 위해 ‘이슬람화’ 됐어요. 을지로에서도 어떤 방식으로든 ‘을지로화’가 돼서 사진 혹은 영상 등을 통해 작업해볼 생각이에요. 단순히 보이는 풍경을 찍는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한 번 더 2차적인 가공을 하는 거죠. 그게 바로 미술이니까요


을지로3가 프로젝트가 더 궁금하다면? 
 
www.euljiro3ga.com 

컨텐츠 기획/제작 : 신한카드 x 어반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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