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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ND/컬처&아트

커피에 인생을 담다, 우리나라 1세대 바리스타 박이추

 

바리스타 박이추

 

우리나라 1세대 바리스타로 불리는 박이추 선생은 예순을 훌쩍 넘긴 지금도 직접 원두를 볶고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린다. 커피가 산업이 돼버린 시대, 마시는 사람이 한 잔의 커피가 주는 각별한 정서를 느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바리스타 박이추 인터뷰

 

“커피 한잔 할래?”라는 말이 인사말이 된 지 오래다.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동네 어디를 가도 원두커피를 내놓는 카페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커피 대중화의 발화점을 따라가 보면 ‘1서 3박’이라는 커피 장인이 등장한다. ‘1서’는 1980년대 고(故) 서정달 선생, ‘3박’은 1990년대 고 박원준 선생과 박상홍, 박이추 선생을 뜻한다. 시대를 풍미했던 이 바리스타들 중 지금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는 사람은 박이추 선생이 유일하다.

박이추 선생은 1988년 혜화동에서 ‘보헤미안’이라는 이름으로 카페를 열고, 2000년에 강릉으로 터를 옮겼다. 이후 그를 따라와 커피를 배우려는 후배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 그 결과 지금 강릉에는 안목해변의 커피 거리를 비롯해 300여 개의 커피 전문점이 자리를 잡았다. 10월이면 커피 축제도 열린다. 한 사람의 바리스타가 강릉을 커피 도시로 탈바꿈시킨 셈이다. 이렇게 그가 가는 길이 곧 커피요, 커피는 곧 그의 인생 그 자체다. 

 

신한카드 인터뷰

왼쪽부터 신한금융투자 평촌지점 조주익 대리, 바리스타 박이추.

 

조주익 대리(이하 조) 선생님께서는 일본에서 커피 공부를 하시다가 1980년대 우리나라에 원두커피를 보급하기 시작하셨죠. 바리스타란 단어 자체가 생소한 때에 커피를 업으로 삼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박이추 선생님(이하 박) 처음에는 생업으로 시작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기보다는 우연이었던 것 같네요. 일본 규슈에서 태어나 자라다가 1970년 초에 처음 한국 땅에 발을 디뎠을 때는 협동농장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에는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 혼자 농장을 운영했죠. 그러던 중 땅 소유권 등기 이전 문제로 재판을 하게 됐어요. 이래저래 농장일로 시달려서인지 문득 도시가 그리워졌습니다. 무작정 도쿄로 향해 그곳에서 커피를 마셨는데 그 향이 참 좋더군요. 그렇게 커피와의 만남이 시작됐습니다. 그 길로 커피 공부를 시작했고, 커피와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다 보니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회사의 이름에 ‘보헤미안’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데 어떤 의미를 품고 있나요? 

보헤미안은 세속적인 행동 규범을 따르지 않고, 자유분방한 생활을 추구하는 사람이나 그런 삶의 양식을 일컫는 단어입니다. 무언가에 억압되지 않고 끊임없이 생동하며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다고 할까요. 저 역시 항상 자신을 담금질하고 앞으로 나아가자는 의미로 카페 이름을 보헤미안이라고 지었습니다. 이는 미래에 대한 도전과 개척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핸드드립 커피

 

아직까지도 매일 같은 시간에 직접 로스팅하고 손님들을 위해 핸드드립 커피를 손수 만들어주신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한 분야에 정진할 수 있는 비결이 궁금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정상이 아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웃음) 일에 푹 빠져 있었다고 표현하는 편이 맞을 것 같습니다. 세상이 움직일 때 모든 것이 같이 움직인다면, 사실 움직인다고 볼 수 없죠. 오히려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 나만의 무언가를 지키는 것이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커피를 대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커피를 내릴 때 주로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여러 가지를 떠올릴 것 같지만, 사실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한 잔의 커피를 위해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그 외의 생각은 잡념이 됩니다. 추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요. 

 

커피 시장 확대에 대한 생각

 

2016년 기준 한국의 커피 시장 규모가 6조 원을 넘어섰습니다. 시장 확대에 비해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커피 한 잔의 가치를 모르는 상태에서 시장만 너무 비대해졌습니다. 커피의 가치가 ‘의미’가 아닌 ‘돈의 규모’로 평가받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커피가 인생을 함께하는 의미를 지닌 문화로 발전하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커피의 가치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물질적인 부분과 정신적인 부분이 있잖아요. 물질적인 것은 한계가 있으니, 대부분의 사람이 적은 비용으로 일시적인 만족감과 행복을 느끼고 싶어 하죠. 그중 제격인 게 커피고요. 보헤미안을 찾는 손님 중에는 커피를 안 좋아하는 분도 있거든요. 커피 안 마시는 사람이 왜 오겠어요. 뭔가를 채우고 싶은 갈망이 있는 거예요. 어찌 보면 각박한 세상을 살고 있다는 생각에 슬프기도 하지만 또 반대로 보면 커피 한 잔이 그 사람의 마음에 행복을 채워줄 수 있는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호 테마는 ‘마에스트로’, 즉 장인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한 분야의 장인이 되기 위해서 어떤 역량과 덕목을 갖추어야 할까요? 

성공과는 별개로 남이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을 생각해내고, 그 길로 나아가는 결단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 두 가지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포기하기 쉬운데 이를 이겨내는 믿음과 노력도 중요하겠죠. 

 

장인 뒤에는 항상 그 기술을 배우려는 제자가 뒤따르죠! 선생님의 커피 기술을 배우려고 많은 후배, 제자들이 강릉까지 발걸음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혹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나요? 

모든 제자가 잘돼서 오래도록 함께했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이 부분에서는 아쉬움이 참 많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대다수가 커피를 돈을 버는 수단으로 여기거든요. 그래서인지 단기간의 수익에만 치중해 오래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10년, 20년 시간을 두고 먼 미래를 보길 바랍니다. 

 

핸드드립 노하우

 

평소 커피에 관심이 많은 신한금융그룹 가족들에게 다가오는 가을에 어울리는 원두와 함께 선생님만의 핸드드립 노하우를 살짝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믿든 안 믿든 저는 커피에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믿습니다.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즐기는 커피도 좋지만 사무실이나 집에서 직접 추출해 마시면서 커피와 함께하는 문화를 만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좋은 기구나 기법을 알려드리기보다는 커피를 대하는 마음가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커피를 친구처럼 대할 때 커피 한 잔이 여러분에게 베푸는 행복의 깊이도 진해질 것입니다. 

 

박이추 바리스타의 목표

 

지금도 끊임없이 커피를 연구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앞으로 목표하고 계시는 바가 있다면 무엇인지 말씀해주세요. 

제2의 인생으로 커피 묘목을 심는 농부를 꿈꿔왔습니다. 그 꿈을 위해 2014년부터 하나하나 준비했습니다. 이런 제 행보를 두고 주변에서는 제 나이를 주지시키거나, 새로운 길 뒤에 따라오는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며 말리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끊임없는 도전을 저의 숙명이라 여기기에 더 넓은 세상을 향한 발걸음을 계속해나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MBC강원영동에서 이러한 제 도전에 투자를 해주며 힘을 실어주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2021년쯤이면 해발고도 1300m에 이르는 라오스 팍세 볼라벤 고원에서 커피 열매를 수확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 본 포스팅은 신한인 9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 글 조주익 신한금융투자 평촌지점 대리, 그룹기자단 사진 최항석